교통약자에게 지도가 필요 없어지는 그날까지 │ 협동조합 무의



협동조합 무의의 서울지하철 교통약자 환승지도


홍윤희 (협동조합 무의 이사장)


일상을 가로막는 이동권 문제

아이가 휠체어를 타니까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문제의식을 늘 갖고 있었고, 종종 SNS에 휠체어 이용자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문제제기를 해왔습니다. 그러다 새로 이사한 동네 지하철 역에 엘리베이터가 한 대도 없어 불편을 겪게 된 것이 데이터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결정적 계기였습니다.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달라는 민원을 계속 넣었지만 전혀 해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대학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펀딩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방송사 피디인 친구가 영상을 만들어 주고 제가 글을 써서 「지민이의 그곳에 쉽게 가고 싶다」 프로젝트를 2015년 카카오 스토리 펀딩에서 시작했습니다.



딸과 함께 (중앙일보 권혁재 사진기자)


처음부터 지도를 만들려던 건 아니었습니다. 환승역에 엘리베이터나 경사로가 있는 장소를 안내하는 스티커를 붙이려는 정도였습니다. 당장 엘리베이터와 리프트를 확 늘릴 수 없다면 최소한 휠체어 길에 대한 정확한 안내만 있어도 더 낫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지하철역에 스티커를 붙이기 위해 허가를 받는 일부터 쉽지가 않았습니다. 우선 서울시가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당시 서울메트로 및 도시철도공사), 국토교통부의 코레일 외에도 민간사업자가 다 제각각이었습니다. 스티커 하나를 붙이기 위해 여러 회사에 접촉해야 했던 것입니다. 이미 펀딩을 진행하고는 있었기 때문에 다른 방법을 고민하다가 환승지도를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발전했습니다.



카카오스토리 펀딩


앱으로 구현되는 지도를 만들 생각이었지만 지도가 완성되기까지는 몇 번의 단계들을 거쳤습니다. 2016년 우연한 계기로 계원예술대학교 광고브랜드디자인과 김남형 교수를 만나게 되었는데, 계원예대 학생들에게 졸업작품으로 제안하면서 교통약자 환승지도를 만드는 프로젝트가 시작됐습니다. 학생들이 직접 휠체어를 타고 현장조사를 했고, 그렇게 2017년 2월, 18개 역의 휠체어 경로를 담은 맵을 만들었습니다.


시민들의 마음을 모아 만들어낸 데이터

이후 2017년 서울디자인재단의 시민 디자인연구센터 용역을 맡게 되면서, 2017년 말까지 약 33개 지하철 환승역을 답사하며 환승 경로에 대한 로데이터(raw data)를 모았습니다. 무의가 모집한 시민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휠체어를 타고서 데이터를 수집했습니다. 이렇게 모인 데이터에 서울디자인재단 소속 연구원과 디자이너가 구체적인 연구와 디자인을 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2017년 말에 만들어진 맵이 지금 무의가 사용하고 있는 버전입니다.



시민 자원봉사자


지도에 필요한 데이터를 수집하는 자원봉사자 모집은 무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뤄졌습니다. 자원봉사자를 모집을 시작할 땐, 사실 정말로 사람이 모일지 반신반의했습니다. 자원봉사자들에게 어떤 혜택을 줄 수 있을지도 고민하지 않고서 무작정 모집했고요.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분이 지원해주시고, 반응도 정말 좋았습니다. 자원봉사자들에게는 작은 기념품을 드렸는데, 그 외 봉사 시간을 요청 한 분들이 몇 분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저희가 봉사 시간을 드릴 수 있는 기관이 아니었기 때문에 서울디자인재단을 통해서 우여곡절 끝에 드릴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자원봉사자 분들이 함께 마음을 모아준 것이, 환승지도를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2018년에는 서울시도심권 50플러스센터와 협업을 했습니다. 이곳은 시니어 시민들에게 의미 있는 일자리를 주려는 기관인데, 재단에서 인건비를 지원받는 시니어 분들이 리서치를 해주었습니다. 이 분들의 참여를 통해 휠체어 이용자 뿐만이 아니라 유아차를 갖고 타는 사람, 스마트폰이나 PC로 지도를 못 보는 어르신 등 모든 교통약자들을 위한 활동이라는 의미를 더욱 분명히 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일회성 자원봉사자들의 경우 조사 데이터의 품질이 들쑥날쑥한 문제가 있었는데, 시니어 근무자들이 고정적으로 일을 해주시니 그런 우려가 해결됐습니다. 그 이외에도 한양대학교, SK그룹 CSR 담당자, SK건설 임직원 봉사자 등 다양한 자원봉사자가 참여했습니다.



시니어 자원봉사자


지하철 리서치를 진행하면서 가장 큰 애로사항은 우선 지하철 사업자가 제각각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각 사업자에게 공문을 넣고 나서도 지하철 역에서 현장조사할 때 번번이 제재를 당하곤 했습니다. 지하철 사업자의 어느 부서로 보내야 협조를 받을 수 있는지 번지수를 찾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막상 현장에 갔을 때 역에서 소통이 안 되어 제재를 당하기도 해서, 자원봉사자들이 실랑이를 하다가 제게 전화를 하기도 하는 등의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자원봉사활동은 데이터 수집 이상으로 중요한 성과들을 만들었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이 휠체어를 타고 다니면서 불편했던 부분을 기록하고, 나중에 불편사항을 모아서 교통공사에 전달했습니다. 추후 지하철역에서 4대문 안 궁 등으로 가는 지도를 만드는 과정에서는 아예 자원봉사자들에게 불편 신고 앱을 깔게 하여 그 자리에서 바로 신고를 하게 유도했습니다. 지하철은 안내판이 휠체어 눈높이에 제대로 붙어있지 않은 경우도 많은데, 안내 문구만 잘 보이게 붙여도 휠체어 이용자들이 훨씬 쉽게 이동할 수 있게 됩니다. 지도를 만드는 과정에서 발견한 개선점들을 현장에 즉각 반영해가다 보면 나중엔 지도를 보지 않고도 편안하게 다닐 수 있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데이터 수집의 과정 자체를 의미 있는 활동으로 이해하는 것도, 돌이켜보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역 내 안내 문구


계속 발전하는 프로젝트

이러한 과정에서 디자이너 고용 비용을 자비로 충당하려고 했습니다. 다행히 한국정보화진흥원의 2018년 ICT를 통한 착한상상 프로젝트에 선정되어 지원금을 받아서, 디자이너 비용을 비롯해 여러 경비를 충당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2018년 말에는 서울시의 열린정부파트너십(Open Government Partnership, OGP)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OGP 프로그램은 시민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프로젝트를 재정적 측면보다는 업무 협업 측면에서 도와주는 것으로. 이 파트너십으로 비로소 서울시로부터 지하철역 실내 지도 자료를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이전까지는 교통공사에서 받은 입체 CAD 지도를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지도로 일일이 변형해야 했습니다. CAD 지도는 설계도면에 가까워서 일반 이용자가 지도로 사용하기 어려운데 반해, 실내 지도 자료는 2D로 변환해서 일반 네이버 지도 같은 모습으로 만드는 작업이 더 수월했습니다.



2018년 정보화진흥원장상 수상


공공데이터를 사용할 때는 여러 가지 제한 사항이 있는데 특히 공공장소의 실내 지도 데이터는 여러 가지 허가 사항이 필요합니다. 일반 공공데이터와 달리, 일정 기간 이후 파기해야 하고 파기확인서를 제출해야 하는 등의 절차가 요구됩니다. 그렇기에 데이터를 사용할 때 담당 공무원에게 제약사항이 있는지 꼼꼼하게 확인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의’의 지도는 3단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단계는 텍스트맵, 2단계는 픽토그램, 3단계는 층별 지도입니다. 텍스트 지도는 텍스트 자료가 편리한 사람들을 위해 제공되는 것입니다. 텍스트 형태는 나중에 필요하면 외국어 번역도 가능하고 시각장애인들에게 읽어주기 기능 형태로 사용될 수 있는 데이터입니다. (무의 지도는 그림 형태라 해당 기능은 없음) 다음으로 픽토그램 지도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지하철 맵과 유사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서울지하철 환승지도


3단계인 층별 지도는 향후 내비게이션을 제작할 가능성을 고려하고 만들었습니다. 사실 자신이 있는 위치에서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려주는 내비게이션이 있으면 그게 가장 최선일 것입니다. 하지만 지하철 특성상 GPS가 잘 잡히지 않아서 내비게이션을 만들기가 힘들었습니다. 비콘 기술을 비롯해 여러 기술들을 알아보고 수소문도 해봤지만 솔루션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도 무의의 이런 고민이 반영되어 정부 기관에서 사업 공고를 냈습니다. 2020년 초 정보화진흥원의 ‘실내 내비게이션 개발’에 대한 공고가 바로 그것입니다. 비록 무의가 참여하지는 않지만 쓸 만한 기술이 발견되어 상용화되길 기대합니다.


카카오맵의 서비스 개시

저는 국가가 이 지도를 만들고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방법은 대중적인 맵을 활용해 거기에 정보를 입력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무의가 하는 일은 교통공사나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이 해야 하는 일을 대신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더구나 신당역처럼(휠체어로 환승하려면 리프트를 3번 갈아타야 하는 등) 설계 자체가 잘못된 경우에는 아무리 친절한 환승지도가 제공된다 해도 이동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어 결국엔 국가가 나서야만 합니다.



카카오맵 교통약자 이동경로 안내 (카카오맵 블로그 참조)


다행히 운 좋게도, 행정안전부의 ‘유니버설디자인’ 관련 컨퍼런스 참여가 계기가 되어, 행안부 협업정책과에서는 지하철 환승지도 제작을 위해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여러 차례 질의를 해왔습니다. 그리고 2020년 8월 행안부는 카카오, 한국철도시설공단과 손잡고 카카오맵에서 전국 도시철도 1107개 역사의 교통약자 이동 및 환승경로 그리고 편의·안전시설 안내 서비스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비록 무의의 지도를 기반으로 한 것은 아니지만 행안부 및 국토부에서 만드는 정보를 바탕으로 하여, 그 정보가 대중적으로 사용되는 ‘카카오맵'에 탑재됐다는 것은 매우 뜻 깊은 성과입니다. 나아가 이런 지도 없이도 휠체어와 유아차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세상, 장애가 무의미해지는 사회를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 갈 것입니다.


제목서울 지하철 교통약자 환승지도(53개역 238개구간)
데이터 명

서울지하철 교통약자 환승지도 사용안내 

데이터 링크https://www.wearemuui.com/kr/seoulsubway
데이터 형식

그림 파일 (jpg)


더 알아보기

[아카이브] 협동조합 무의